멋진 친구

2021.10.09 07:52

박상형 조회 수:4

멋진 친구(5;1~16)

 

 

1. 고난이 죄의 결과라면

 

엘리바스가 욥에게 긴 말을 계속하지만

그의 말의 핵심은 이유 없는 고난은 없다는 말이다.

 

(6)어려움은 흙먼지에서 나는 게 아니고 고난은 땅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지.

 

 

욥의 고난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아마도 죄가 원일 일 것 이라는 말이었다.

 

 

엘리바스의 말대로 고난이 죄의 결과라면,

고난 받지 않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마음에 음욕을 품은 것조차도 큰 죄라 하셨으므로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지금 욥보다 더 큰 고난을

받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용서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어긴 것이며 차별한 것이다.

(설마 예수 전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

 

 

2. 판단

 

말씀은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엘리바스는 욥을 판단하고 있다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말과 성경에 없는 자신의 생각으로,

욥이 내 뱉은 한탄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8)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께 내 사정을 맡겼을 텐데.

 

 

판단하지 말아야 하지만 판단을 한다.

판단들 하기를 좋아하니까 하는 말인데,

그 대상자가 적이 아니라 적어도 친구라고 한다면

한가지로 아흔 아홉 가지를 판단하려들지 말고

아흔 아홉 가지로 한 가지를 감싸줄 수는 없을까?

 

 

그 사람의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그 사람을 충분히 알고 나서 판단을 해도 하자는 것이다.

 

 

잘한 것은 잘 모르고,

잘못한 것만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못한 한 가지, 그것도 진짜 잘못이 아닌

단지 내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인 그 한 가지로

아흔 아홉 가지의 잘한 점을 무시하고 판단해 버리는

친구인 엘리바스의 판단이 과연 옳은 일일까?

 

 

3. 두 부류

 

나를 판단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일년 간 내 묵상에 동의하는 댓글을 달던 사람인데

어느 날 묵상이 자신의 생각과 반대가 된다며

다신 상대안하겠다며 인연을 끊어버린 사람으로,

 

 

나는 그 사람에게 내 글을 보아달라고 한 적도 없고,

댓글을 달아달라고 한 적도 없으며, 나와 일면식도 없기에

실례나 무례를 범한 일은 결코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일 년 간 내 묵상을 눈과 마음으로만 관찰하다가

내가 성경공부를 하는 것을 알고는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싶다는

댓글을 단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성경공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적도 없으며

나와 일면식도 없었기에 학연이나 지연 같은 긍정의 요소가

전혀 적용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분은 나와 지금 6개월째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친구 같았는데 원수처럼 된 사람이 있었고

친구 같지 않았는데 친구처럼 된 사람이 있었다.

 

 

4. 내 친구

 

카톡으로 선물이 도착했다는 멧세지가 떴다.

확인해 보니 회사 동료가 보낸 커피 선물권이었다.

 

그간 보내준 색소폰 콘서트 입장권이라며

고마움에 보낸다는 멧세지였다.

 

 

맛있는 커피도 받았고 따뜻한 마음도 받았다.

멋진 친구다.

 

 

나도 친구를 만나고 싶고 따뜻한 친구가 되고 싶다.

내 생각으로 고난당한 욥을 판단하는 엘리바스같은 친구 말고

말씀으로 사랑과 위로를 서로 나누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말씀을 하루 종일 얘기하고 나누어도

질리지 않고 내일을 아쉬워하며 헤어지는

그런 친구들을, 또 그리고 더 만나고 싶다.

(2021. 10. 9.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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