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천막에서...

2021.08.11 08:41

박상형 조회 수:1

나의 천막에서...(삿4:11~24)

 

 

1. 부창부수

 

부창부수란 남편이 노래하면 아내가 따라한다는 말이다.

한 마디로 그 남편에 그 아내란 말이다.

자기 족속을 떠난 겐사람 헤벨과 

자신의 장막으로 시스라를 들이고 적장을 죽인 그의 아내 야엘에게서 

부창부수의 모습이 보인다.

 

 

2. 비주류를 쓰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오른손에 장애를 가진 에훗을 쓰시고

여자인 드보라를 사사로 부르시더니

요번에는 모세의 처남인 호밥의 자손 겐 사람인

헤벨의 아내를 사용하신다. 

 

 

3. 기존과는 다른 방식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처남인 호밥과 그 가족은

모세를 따라 가나안에 와서 한 곳에 정착했지만

헤벨은 겐 사람들과 결별을 했다고 한다.

 

(11)겐 사람 헤벨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인 겐 사람들과 결별하고 

게데스 근처에 있는 사아난님의 큰 나무 곁에 장막을 치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적군들이 즐비한 때에 자신들의 족속과 결별한다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위험한 행위이었다.

왜 자신들의 족속과 결별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그들이 살고 있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헤벨의 가문은 하솔왕 야빈과 좋은 사이를 유지했지만

이스라엘 처럼 그들의 문화에 동화된 것은 아니었던 것 처럼 보인다.

그랬다면 헤벨의 아내 야엘이 시스라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서로 불가침 조약 같은 것을 맺으며 사는 사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헤벨 가문은

자신의 족속과도 결별하고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르지 않는 족속이었다

 

 

4. 헤벨의 아내 야엘

 

시스라가 자신이 자랑하는 철병거를 내 던지고 걸어서 도망을 치다가

헤벨의 아내 야엘의 천막으로 도망을 왔다.

 

 

헤벨의 천막이 아니고 왜 아내인 야엘의 천막이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헤벨과 야엘이 따로 천막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 헤벨은 어디가고 없고 아내가 남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외간 남자를 자신의 천막으로 들여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시스라는 야엘의 행동을 보고 안심을 했고 깊은 잠에 빠진다.

어떻게 야엘이 시스라를 안심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그 때 야엘이 거침도없고 망설임도 없이 시스라를 죽인다.

 

 

천막용 쐐기 못을 집고 망치로 관자놀이에 박았는데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쐐기못이 관자놀이를 뚫고 땅에 박혔다고 한다

마치 시스라에게 원한이라도 있었던 사람처럼  야엘은 행동했다.

 

(22)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이고

시스라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시스라가 깊은 잠에 빠지지 않은 채 섣부른 행동을 했다면

야엘이 되려 잡혀 죽었을 것을 뻔한 일이었다.

 

 

여자인 야엘이 얼마나 떨렸을까?

야엘은 시스라를 쉽게 죽인 것 아니라 

목숨을 걸고 죽인 것이다.

 

 

시스라를 찾아온 바락에게 당신이 찾는 사람을 보이겠다며

시스라의 시체를 보여준다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야엘의 믿음을 사용하셨다.

 

(23)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5. 하나님의 주류

 

하나님의 주류는 세상의 비주류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류를 사용하시지 않는다.

세상에서 저주인 십자가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세상에서 주류인를 확인하는 것 보다

하나님의 주류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

 

 

적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한번에 적장을 잡아죽일 수 있었던 야엘의 지혜와 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평소에 농축되었던 믿음의 힘이 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믿음을 농축시킨다.

무엇을 해서 내 믿음을 소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만날 마지막 그날을 위해 믿음을 농축시킨다.

 

 

내 믿음의 농축은 

세상과 구별된 나의 천막에서

말씀을 매일, 바르게 먹는데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2021. 08. 11.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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