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세상의 중심] 사랑과 희생의 힘
강영우 전 美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부인 석은옥 씨
시각장애 남편은 美 정책차관보, 큰아들은 조지타운대 안과교수, 둘째는 오바마 정부 법률특보로
남편 만난 후 시각장애인 교사의 길 선택…이젠 받은것 나눠주고파 봉사단체 이끌죠
자녀들에겐 어렸을적부

석은옥 씨가 남편 강영우 전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일할 때의 사진(사진 윗쪽 액자)과 둘째아들 크리스토퍼 강이 오바마 행정부의 법률 특보가 됐다는 신문 기사(사진 아래쪽 액자)를 가리키며 가족들을 소개하고 있다. 석씨와의 인터뷰는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 자택에서 3시간 동안 이뤄졌다. <워싱턴 장광익 특파원>
1961년 5월 셋째주 어느 날. 19세의 숙명여대 1학년생 석은옥(당시 이름은 석경숙)은 서울 소공동 걸스카우트 본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던 중 한 시각장애 소년을 만난다. 두 달 전 서울맹아학교에 막 입학해 반짝거리는 학교 배지를 단 17세의 미소년이었다. 소년은 원래 시각장애인이 아니었다. 소년은 중학생 때 축구를 하다 눈에 공을 맞는 바람에 시력을 잃었다. 이후 병원에서 2년 반을 치료하는 등 모두 5년의 시간을 고통과 방황으로 보내야 했다.

소년은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당시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시력으로 더듬거리며 걸스카우트 본부를 찾은 것. 첫날 수업이 끝난 후 그녀는 자원해서 시각장애 소년을 버스정류장까지 안내해줬다.

이렇게 두 사람은 만났다. 그 시각장애 소년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당시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냈던 강영우 박사다.

"시각장애 소년이 너무 측은하더라고요. 그래서 1년 동안 자원봉사로 소년을 돌보는 일을 했어요." 그녀는 이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울맹아학교 기숙사로 찾아가서 소년에게 책을 읽어 주고 보살펴 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시각장애 소년의 인생은 기구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6ㆍ25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4남매를 키웠다. 하지만 장남이 시력을 잃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1년 후에는 봉제공장을 다니며 가족을 돌보던 누나마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석씨는 자원봉사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소년을 계속 돌봤다. 자원봉사를 넘어 친누나처럼 그를 돌보기로 한 것이다.

"그와 함께 식당을 가면 재수없다고 쫓겨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시각장애인이 타면 타이어가 펑크난다며 버스도 타지 못할 정도였죠. 시장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어요. 시각장애인이 가게 근처에 오면 장사가 안 된다는 미신을 믿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6년간을 시각장애 소년의 누나 역할을 했다. 그녀는 원래 영어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각장애 소년을 가르치면서 그 꿈을 포기한다. 대신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는 시각장애인 교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전무했기 때문에 그녀는 대학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1967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펜실베이니아 주교육청에서 1년 과정으로 시각장애인 교육훈련을 받았다. 당시에는 한국 유학생을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시절이었던 만큼 석씨는 어딜 가나 화제를 모았다. 소설 `대지`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펄벅 여사도 그때 만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이 시각장애인인 강씨를 영원히 섬기기 위한 훈련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랬다. 그녀가 미국에 간 사이 강씨는 1968년 연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도 썩 잘했다.

미국에서 1년 만에 귀국한 석씨도 결혼할 나이가 됐다. "소개(선)도 많이 받았죠. 연애도 해보려고 했고요. 그런데 왠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질 못하는 거예요." 그러던 차에 이미 성인이 돼 있던 강씨가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석씨는 그로부터 강씨가 졸업할 때까지 3년간 약혼녀로 그를 지켰다.

1972년 2월 26일 두 사람은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름다운 기다림이었어요. 1년은 자원봉사자로, 6년은 누나로, 또 다른 3년은 약혼녀로 그 사람을 기다렸지요."

결혼 직후 석씨는 자신이 미국에서 만났던 지인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시각장애인과 결혼했고, 미국에 가서 공부할테니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장애인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죠."

그녀의 편지를 받은 지인들이 강씨의 장학금을 약속했고, 이에 답하듯 강씨도 명문 피츠버그대 교육학과 박사과정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석씨가 반한 강 전 차관보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녀를 시각장애 소년의 자원봉사자에서부터 평생의 반려자로 이끌었을까.

"신앙심이 깊었어요. 자신이 시력을 잃은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통해 뜻을 이루려 하신다고 강하게 믿더라고요."

신앙인이 아니면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는 정말 그랬다. 몇 번 자살까지 시도했던 소년이 한국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내기까지 그의 삶은 `신앙의 힘`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를 않았다.

"한번 공부를 시작하더니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요. 그리고 참 자상해요." 남편 강씨에 대한 칭찬은 끝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자상하냐는 질문에 "결혼 뒤에는 조금 달라지더라"며 웃었다.

유학시절 그를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들기만 했다. 등하교는 물론이고 박사과정에서 읽는 그 많은 책을 모두 녹음해서 들려줬다. 당시 피츠버그대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교과서를 읽어 녹음해 주던 봉사자들이 있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당초 약속한 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한국에서는 어디서도 강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때 한국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되레 이상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봤어요. 졸업을 하고 나니 비자도 만료되고 생활비마저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1977년 1월. 미국 정부는 장애인들이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교육법을 개정했다. 장애인 전문가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외국인이라도 자격만 되면 영주권을 주겠다고 나섰다. 강씨도 인디애나주 개리시의 교육청에 자리를 잡았다. 첫 취직이었다.

석씨도 이때 장애인을 위한 임시 순회교사로 취업을 하게 되고 석사과정도 마쳤다.

"그전까지는 항상 내가 남편의 지팡이가 됐는데 임시교사가 된 이후부터는 남편이 제 등대가 됐어요. 수업교재부터 석사과정 보충수업까지 남편이 제게 개인교습을 했어요."

이후 강씨는 일리노이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28년간 그곳에서 순회교사로 일했다.

"남편이 대학교수로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만나고, 그 덕에 아들 부시 대통령도 알게 됐죠".

석씨와 강 전 차관보 사이엔 아들만 둘 있다.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천재 소리를 듣던 큰아들 폴(한국명 진석)은 조지타운 의대 안과교수가 됐다.

둘째인 크리스토퍼 강(한국명 진영)은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책을 읽어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간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변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크리스토퍼는 변호사가 됐고, 민주당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입법특보로 임명됐다.

미국 언론은 그를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기보다 소중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죠. 다민족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인임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생명의 존귀성과 평등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정신을 먼저 가르쳤어요."

그녀는 또 "큰아들 폴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같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그렇게 봉사를 하더니 지금은 자기 아들에게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시켜요"하며 웃었다. 두 아들은 어디에서나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어머니`라고 답한다. 두 며느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외국 며느리들에게 시어머니 석씨는 `인내`를 이야기 한다. "행복한 가정은 인내에서 출발하고, 인내는 모든 걸 준다"고 가르친다.

요즘 석씨는 봉사활동에 흠뻑 빠져 산다. 남편 강씨의 피츠버그대 재학시절 자신들을 도와줬던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못해 자신이 그일을 똑같이 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이라는 봉사단체를 2006년에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도서 녹음뿐 아니라 한인 이민 여성들을 상대로 옷수선 기술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일도 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쓴 저서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에서 나오는 인세로 2005년부터 매년 시각장애인 1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각장애 남편을 부시 정부의 차관보로, 큰아들을 워싱턴의 `천재의사`로, 둘째아들을 오바마 대통령 측근 특보로 키워낸 그녀의 삶. 10대 후반 시각장애 소년을 만났을 때부터 기자와 인터뷰를 갖는 순간까지 그녀는 늘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다.

■ 석은옥 씨는…

△1967~6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주정부 재활청연수교육 시각 장애 분야 특수자격증 취득 △1972년 숙명여대 교육학과 졸업 △1985년 미국 인디애나주 퍼듀대 교육학 석사 △1977~2004년 인디애나주 개리시 교육청 시각장애 순회교사 28년간 봉직 후 은퇴 △2006년~현재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저서 : `나는 그대의 지팡이, 그대는 나의 등대`(2004년)

[워싱턴 = 장광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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