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먹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없다(히9:23~28)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에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제물이 필요하다
(22)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피를 흘림이 없이는, 죄를 사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드리는 제사의 제물은
대제사장들이 드리는 것과 달리
자주 드리지 않고, 단 한 번만 드리는 제사이었으며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제사이었기에
그들의 제물과는 달라야 했다.
(25)대제사장은 자기의 피가 아닌 짐승의 피를 가지고 해마다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주 자기를 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달랐다.
달랐기 때문에 나 역시 달라야 한다.
세상이 드리는 방법과 달라야 하고
세상이 사는 방법과 달라야 한다.
나는 유한한 세상의 제사가 아닌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로
죄를 모두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다르지 않다면 예수의 제사로 용서받지 않은 것이다.
다르지 않다면 여전히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르게 보이지만
세상의 힘이 들어오고
세상의 맛을 알게 된 후에
세상과 같이 산다면 그것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27)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운명이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난다면
심판이 있을 리 없다.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면 다르게 산다.
다르게 살지 않는 것은 심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다시오실 때 심판하실 것이다.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 때는 예수님은 자신의 죄와 상관없이 오시며
그 때에 오셔서 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순간 심판은 끝이난다.
예수님은 오직 자신을 바라는 자들에게만 나타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지 않는 것은 심판을 받을 근거가 된다.


다르게 살고 싶다.
세상이 비웃고, 세상에 우습게 보여도
세상이 예측할 수 있고, 세상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닌
세상을 놀래케 하는 세상에! 소리를 들으며...


그런데 이젠 왠만한 행동으로 세상이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행동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착한 행실도 좋고, 봉사도 좋고
나를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으로 세상은 놀라지 않는다.
세상이 모르는 것으로 세상을 놀래켜야 한다.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이 자신을 드려서 세상을
놀래킨 것처럼
나 역시 예수님이신 말씀을 먹는 일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예수의 죽음이 별일 아닌 것 같았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한 큰 일 이었듯이
말씀을 먹는 것이 세상이 볼 때는 별일 아닌것 같이 보이겠지만
그것이 영원히 사는 큰 일 이니까!


예수를 먹지 않으면 예수와 상관없다.


(요6: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2019.03.28.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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