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는 방법

2018.02.09 08:48

박상형 조회 수:104

하늘을 보는 방법(고전15:35~49)


부활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없지 싶다.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봤을테니까!


그런데 왜 먼저 썩어없어져야 되는 부활과
그에 따른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여지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부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잘못알고 있어서 그렇지 싶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이기도 하지만...


어떤 고린도교인들이 바울에게 부활에 관해
묻는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35)


질문이 애매하다.
모르고 묻는 것인지 잘못 알고있는 것인지
파악이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어딘지 모르는 방향이 바로잡히는 것과
가던 방향을 바꾸는 일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르던 방향을 바로잡는 것보다
알고 가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쉽지 않다.


바울은 모르는 사람과 잘못알고 있는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고 답변을 하는 듯 하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36)


죽어야 부활이 있다고 한다.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면 죽는 것을 아는 사람은 부활을 알까?
전에 모교회 권사님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저는 부활하면 처녀 때로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교회를 30년을 다닌 사람의 말이었다.
부활을 아는 것 같지만 이 또한 부활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그리고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를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3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38)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42)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43)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44)


부활은 예전의 썩을 몸을 가진 육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부활은 그 썩을 몸이 죽어야 되는 상태이다.
그러니 예전의 모습을 그리워 하는 것은
부활한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을 잘 모르고
그것이 지금의 육체와 비교가 안된다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부활을 알려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맛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늘의 신령한 것은 땅에 있지 않다.
땅에서 맛 보는 것은 맞지만 땅에 있지 않다.


땅에 속해 있지 않은 하늘의 신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말씀에
담아 놓으셨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맛 보아야 한다.
말씀에서 맛 보지 못한다면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다.
그리고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은 맛은
하늘의 맛이 아니다.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않으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요5:38)


말씀을 모르면 부활을 모르는 것이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잘 알지만 말씀은 잘 모른다고
말해선 안된다.


말씀은 부활이 실제가 되게 한다.
그리고 나에게 실제가 된 부활은 삶의 방향을
세상에서 하늘로 바꿔줄 것이다.


말씀에서 하늘을 본다.
세상에선 볼 수 없는 하늘을...
오늘 하늘은 붉다.
먼저 하늘에 가 계신 있는 선조들이
우리교회를 보시고 우시나 보다.
(2018. 02.0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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