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믿음

2017.01.30 07:12

박상형 조회 수:36

찢어진 믿음(눅3:10~20)



무리가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세리들과 군인들도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러나 이 말이 낯설지 않은 것은

나도 늘 묻는 말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세례요한의 말에 찔림을 당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은

믿음과 행동이 심각하게 분리된 

유대 사회에 경고한 말이었지

잃어버린 행위를 회복하라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행위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 행위가 들어 있고

행위의 몸통은 믿음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믿음과 행위가 분리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위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 입니다.

믿음이 아닌데 왜 자꾸 믿음이라고

말하느냐는 것이지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찢어진 믿음이 우리의 어떤 행위로

붙여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 아닌 것들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유대사회에,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오늘의 교회에

던지는 경고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끊어짐 없이 이어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구원자가 아닌 

심판자로 소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우월감은

말씀(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들의 가장 큰 비극 또한 말씀 이었습니다.

말씀은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말씀의 주인공인 

예수는 몰랐다는 것 말입니다.



아니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실 것도 알고 있었고

그 분의 오심을 고대하고도 있었지만

세례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마음에 감동은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물으며

마치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이,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냥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 같이 말입니다.



구원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구원은 어떤 행위에 근거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안에 들어있는 행위를 분리해

내는 일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기 이전에

나를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 맞지요?

내 안에 계신 분이 예수님 당신 이십니까?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성령님 이시지요?

를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확인(확신)이 되면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께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싫어하면 훈련을 통해서라도)

알려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이전에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기 이전에

예수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믿는 것을 전해주는 것,

그리고 받은 것을 알려주는 것

내가 할 일 입니다.



아이~ 성령님! 

아주 밝게 시작하고 그 보다 더 환하게

마치려고 했는데요...

(2017.1.3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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