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기복을 디스함

2017.01.28 06:26

박상형 조회 수:45

새해 첫 날, 기복을 디스함(눅2:39~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습니다.

균형있는 성장을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들을 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세상에서도 잘 되고 잘 살아야 한다고...



정말 그 말을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 것 일까요?



좋아요 그렇다 치자고요

그럼 어릴 적에는 그렇게 지혜로우시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며 사셨던 예수님이

말년에는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종교지도자들과 긴장과 갈등을 부단히도 

조성하시고



결국에는 그들에게 모함을 당해

조롱당하고 채찍에 맞고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그것은 잘 되고 잘 산 일이 아니잖아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세상에서도 

잘 되어야 한다면 예수님은 차치하더라도

가족을 다 팽개치고 그 분을 따르며

결국 순교를 했던 믿음 철철 열 두 사도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이 말이 지금 잘 하고 있는 사람 

디스하는 것 처럼 보여요?



지금 세상에 희망이 되어야 할 

내 종교 기독교가 세상에 욕을 먹고

이렇게 다른 종교로 변질되어가는 것이 

다 무엇 때문인데요? 



십자가의 믿음이 들어와야 할 자리에 

기복신앙이 들어와서 그런 것 아니었나요?

그런데도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 이렇게

예전과 같이 기복을 말해야 하냔 말이죠?

또 그것을 나보고 그냥 보고만 있으라고요?

그럴 순 없죠.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그것이 비록 칭찬일지라도)




왜냐하면 그는 세상이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세상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희생시켜 가며

자신이 죽더라도,

그럴 수 만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동족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바울처럼 말입니다.



구원을 받았는데 무엇을 더 받겠다는

말입니까?

안 받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받은 큰 구원을 노래하지 않고 

작은 상 받는 것을 더 즐거워 하는 것은 

내가 구원을 받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행위 인데 그래도 계속 하실 건가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인간이 되셔서

치욕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주신 것보다 더 큰 것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난 구원을 노래합니다.

발등찍힐 눈꼽 달고 떡진 머리지만 

일어나자 마자, 맨 먼저...



이제 씻으러 가야 겠다.

(2017.1.2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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