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표딱지

2016.12.01 08:07

박상형 조회 수:78

추억의 표딱지(시22:1~18)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다윗이 고통으로 인해 탄식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고통의 말기 대사이지

초기에 써서는 안되는 말 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전략이 

바로 이 때를 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봐 하나님은 네 편이 아니지?”

“네 편이라면 이런일이 오게하겠어?

“네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는지

하나님이 모른다는 것이

이런 것들로 증명되는 거야 알았어?”

하면서 말입니다.



또한 이 말에는 유효사거리가 있는데

입밖까지여야지마음까지 여서는 안됩니다.



입밖으로 나오는 말로 끝내야지

가슴에 담아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용하여 

(심지어 죄까지도 사용하시어)

우리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탄식은 하나님께만 하십시오

그리고 탄식으로 하나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아십시오



하늘보좌를 움직이게 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그의 긍휼을 

바라는 자식의 기도여야 합니다.



“아버지 도와주세요”



두팔을 벌리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 날것 같은 무서운 얼굴과

큰소리로 외치는 기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면

나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면

어느 누구도 나를 구원밖으로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많이 아는 자

하나님보다 힘이 센자라며 모를까?



은혜의 기억이 고통을 견디게 한다구요?

당신이 받은 은혜는 어려울 때를

대비해 받아놓은 것인가요?

그 때 기억해내야만 하는 정도밖에 

안되는 추억의 표딱지입니까?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축소시키는

해당행위(예수당)를 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는 나의 어떤 행위로

인해 상처받지도 않을 뿐더러

아주 미세한 흠집도 낼 수 없습니다.



행여 이 말이 구원받은 나는

이제 어떤 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말로 들린다면 

지금 당신이 가진 은혜는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를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경홀히 취급받아서는 안되니까요.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를 아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2016.1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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