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금지, 냄새나요!

2016.05.23 08:19

박상형 조회 수:46

상상금지, 냄새나요!(슥7:1~14)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대로
이번 오월에도 금식할까요?”
벧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려고 물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은 칠십 년 동안
을 말합니다.
이들은 지금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을 해 왔습니다.


여러해 동안 행한대로라는 말 안에는
이 정도면 잘 한 거 아니냐는
자랑이 담겨 있습니다.


또 이 정도면 했으면 하나님측에서도
무언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불만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그건 내가 아닌 널 위해 한 일이잖아!
누가 그렇게 하래?”


난리 났습니다.
칠십 년 동안 해 온 일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
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대상자가 특정한 몇 사람이 아닌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라는 것 입니다.


이들은 지금 칠십년 동안
관행대로 행한 일을 가지고
그것도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을테지만
결국은 자신들을 위해서 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수십여 년 동안 행한대로
매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 번 정도씩
그 관행이 깨지기도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화장실 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는 일 입니다.


어느 날 혹시 하며 확인해 보면
물이 내려간 것을 보고 안도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관행은 이런 것 입니다.
안 한 것 같지만 한 것 말입니다.
했지만 별일 아닌 것 말입니다.


이 아침에 침 튀겨 가며
굳이 더러운 것을 비유로 든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믿음의 관행은
배설물 정도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해 놓고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니냐는
관행이 나에게도 많지 싶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관행을 받으 실
그럴 분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하고 안 하고 를 잊어버릴만큼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일들이 나를 위해
먹고 마신일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반대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반대의 일은 나의 반대 입니다.
나의 반대는 이웃이 아닙니다.
진실한 재판, 인애와 긍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자기를 위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나의 반대는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내 삶을 재판하고
진리를 모르고 진리에 궁핍한 자에게
진리의 내용인 사랑과 긍휼을 나누어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 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을 잘 안다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진리는 관행을 깨기 때문에
관행이 반항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선포하는데 반항 받지 않는 것은
올바른 진리를 선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말에 동의 합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으려고 했지만
도리어 책망 받은 일,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이
잘못 하고 있는 일,
그 일이 문자 그대로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 일까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위한 일 일까요?
혹시 우리가 관행으로 드리고 있는
예배는 아니겠죠?
(2016.05.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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