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데 그래?

2016.02.26 08:00

박상형 조회 수:61

누군데 그래?(마21:1~11)


사람들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보고
소리 높여 환호합니다.
“예수가 최고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소리높여 찬송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을 알고 이러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죽으러 입성하시는 것을
미리 알았어도 이랬을까요?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성안에 있었던
예수를 모르던 사람들조차
덩달아 흥분을 합니다. 누군데 그래?


사람들은 철저히 세상적으로
예수님을 대하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성경적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합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지만
사람들은 환호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성경)를
이루기 위하여 나귀를 탔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욕심)를 이루기 위해
육신의 옷을 타고 가라고 벗어놓습니다.


아~ 이 격차가 언제나 좁혀질까요?
아~ 이렇게도 멀리 벌어진 이 차이가
과연 좁혀질 수 있긴 있는 걸까요?


“아니야 나도 성경적으로 생각하거든
그래서 호산나 호산나 라고 외치잖아!”


그말이 정말 성경적일까요?
그들이 말하는 구원이 예수님의 구원과
같은 맥락의 구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원은 그들만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육신의 행복을 위한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적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예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믿음을 세상의 연장선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
이 차이가 좁혀지는 것을
성장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 수 없지만
성장하지 못하면 믿음을 알 수 없습니다.


성장한 믿음은
예수님 저에게 업히세요 가 아니라
예수님 저 좀 업어주세요 입니다.
에수님 앞에서
예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니까요!
그 마음이 자라는 것이 성장이니까요!


키는 작지만 믿음만은 육신을
따라가지 않게 하옵소서
(2016.2.26.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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