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마19:1~12)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고자

질문을 합니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려도 되지요?

질문에 날카로운 가시가 들어있습니다.

네가 평소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는데

그럼 이 말에는 어떻게 대답할래? 

라는 의미 입니다.



예수님은 질문의 의도를 아셨지만

그래도 대답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짝 주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율법을 기준으로 질문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모세는 이혼을 허락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돌이 떡이 되게하라는 질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것이니라 하고 대답을 하시니까

그럼 이건 어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다 쓰는 모습 말입니다.

 


답을 얻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뜨리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걸 모르실리 없는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여자를 낮게 취급하고 언제든지 버려도

된다는 너희들의 그 완악함 때문에 

여자를 보호해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본래의미는 그렇지 않다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마지막 가시를 던집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이렇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요.



끝까지 배우려는 모습이 아닙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지식을 지키려고 합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말씀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나서



그래 이제 그만하자

너희들의 어리석은 지식의 한계는

끝이없구나 하면서 대화를 끝내고 싶은데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지식과 마음에

개의치 않고 대화를 계속 이어가십니다.

모든 사람이 그래서는 안되며

오직 타고난 사람만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는 까닭은

예수님의 말씀과 자신들이 알고 있던

율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들은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말씀을 어설프게 알고 있다면

예수를 시험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세상의 논리로 생각하면

또한 그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그 말이

내 신앙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 완악함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다는 말이

이제까지의 내 신앙생활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 그리고 구원입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어찌할 수 있다는

내 완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기에

하나님이 끝까지 데리고 가실 것이고

마무리 하실 것입니다.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말씀을 따라갈 뿐입니다.

(2016.2.2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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