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하는 것이 힘들다면

2015.10.26 07:00

박상형 조회 수:78

계속하는 것이 힘들다면(살전1:1~10)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을 가지고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에게 본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모범은
말씀의 큰 확신이 없어서는
또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고는 보일 수 없는
신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범은 본받음을 통해 전해집니다.
예수님이 먼저 모범을 보이셨고
사도들과 바울이 그것을 본 받았으며
이제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전해져
그들이 세상에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없다면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믿음의 본이 힘들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받은 것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박해를 받고 모함을 받아
쫒겨나다시피 한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받은 어린 성도들도 지금
믿음의 본을 보이고 있는데
모태신앙이고 편하게 믿은 내가
못보일 본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 건지 말 건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하는 것이 힘이든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계속할 수 있는 힘은 기쁨입니다.
세상의 기쁨이 아닌 하늘의 기쁨말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간 유익하지만
하늘의 기쁨은 계속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받으셨나요?
그 기쁨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쁨을 쫒아가는 것은 아닌가요?


조물주가 피조물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영원한 삶을 주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를
거저 받았는데 더 무엇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요?


훈련순장으로 훈련생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훈련순장을 하니 전보다 무서워졌다고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전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잠간없어질 것이 아닌
영원히 누릴 기쁨을 알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믿음의 본을 보이고
믿음의 소문이 나서 또 다른 훈련생을 섬길 수 있는
나보다 훨씬 나은 훈련순장으로 세워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떼문입니다.


훈련생들의 믿음의 발걸음에
온 마음을 모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저녁에 다들 모이는거 알쥐유~
(2015.10.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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