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도 소망이 있다

2014.09.29 08:20

박상형 조회 수:63

마귀에게도 소망이 있다(스10:1~15)


큰 희망을 품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가
크게 실망을 하고 통곡을 합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새 주의 계명을 저버리고 이방민족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며
그들의 여자들과 통혼하는등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 스가냐가 슬퍼하는 에스라에게 와서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범죄는 하였으나
아직도 소망이 있으니 다시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세척이나 남았다고 하는
이순신장군처럼 말처럼 들립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마친 에스라는
모든 국민을 삼일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큰 비와 함께 떨면서 집회를 합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자복하며
다시는 그 지방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이방여인을
끊어버리겠다고 큰 소리로 결단을 합니다.


대단한 집회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는 안하겠다는 결단만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던 여자들도 끊어버리겠다는
결단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성령이 임재하시는 집회였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는 일은 없을 듯 보이는
대단한 집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대단한 집회를 비웃고 있는
한 무리를 소개합니다.
그 일을 반대하는 요나단과 야수야 그리고 그들을
돕는 자들이 있었다면서 말입니다.


이거 별거아닌 일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대단한 일로 보입니다.
별거아니였으면 지금 이런 상황에
성경에 기록되었을리가 없습니다.


이 일에 모든 사람이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만이 동참을 했습니다.
반대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반대자를 하나님께로 데려오지 못하고 집회를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소망을 활용한 집회였지만
마귀에게도 소망을 준 집회였습니다.


처음에는 집회가 중요했겠지만
나중에는 그 집회를 유지시킬 무엇을 했을까요
그것이 또 다른 집회일까요?
집회 한 구석에서 소망을 품고 있는 마귀가
왜 눈에 보이는 것일까요?
(2014.09.29.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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