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고, 살리고(삿9:46~57)


나를 아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 째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이고
두번 째는 하나님을 통해 나를 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은
점점 나를 위축시키지만
하나님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하나님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
아버지 기드온과 달리
남을 통해 왕이 된 아들 아비멜렉의
자존감은 형편없습니다.


아니 이것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결정되었기에
다른 사람의 배반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천명이나 죽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천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데
아비멜렉의 분노하는 모습에서는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만 보일 뿐
영웅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첫번째 분노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었지만
데베스로 옮긴 두 번째 분노에서는 자신이 오히려
한 여인의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분노는 다른이를 죽이고 자신을 죽입니다.
다른 이를 살렸으면 자신도 살았을텐데


죽을 때는 솔직해 진다던데
아비멜렉의 낮은 자존감은
죽을때까지 따라다닙니다.


"나는 여자의 맷돌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남자인 네 칼에 찔려 죽은거야!"


이것이 남에 의해 내 존재가
결정된 사람의 최후의 모습니다.
분노, 잔인, 비참, 그리고 불쌍함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내 존재가 결정되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도 살리고 나도 살고
(2013.09.24.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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