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너의 힘

2020.01.10 08:05

박상형 조회 수:2

질투는 너의 힘(요3:22~36)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보고 질투를 한다.
사람들이 다 그 사람에게 몰려가고 있다면서...
(26)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전에 요단 강 건너편에서 선생님과 함께 계시던 분, 선생님이 증언하셨던 그분이 지금 세례를 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그분께로 가고 있습니다.”


세례는 자기들의 밥 그릇인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개뼉다구가
자기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먹는다는 말을
아주 점잖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질투는 이런 것이다.
점잖게, 근엄하고 조용한 말로 하는 것 처럼 보여도
이 마음이 속에 있지 않을까?


하긴 제자들이 질투를 할 만하다.
요한의 세례는 자신의 존재자체를 나타내던 것이었고
세례가 빠진 요한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름도 세례요한 아니었던가?


왜 예수는 그것을 아시면서도
세례를 주시고 있는 것일까?
 

어쨋든 요한의 대답이 멋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7)이 말에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하늘에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예수는 질투의 대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 앞에서는 내 존재가치가 벗겨져야 되는 것을
요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30)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내가 예수 앞에서 어떤 존재라고
내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가치가 있다고...
(31)위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이시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해 땅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시는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나의 육신의 가치가 벗겨질 때
하나님이 주신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32)그분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저짝편에서 요한이 하던 세례를 똑 같이 행하신 이유는
요한의 사역의 바톤을 이어받은 행위이기도 하겠지만
너의 존재가치가 부인당할 지라도 질투하지 않고
예수를 신뢰할 수있겠니?
라는 질문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믿음이니까!


나 예수가 너에게 어떤 가치가 있니? 라고 물으신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좋을때만 주님이십이다.
내가 잘 살고 내가 세상에 부인당하지 않아야 주님이시지요
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베드로처럼 주님이 아십니다. 라고
슬쩍 핵심을 피해서 대답할까?


요한은 그분은 흥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고 했는데
교회가 그분도 흥하고 나도 흥해야 한다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요한의 말대로 그 분이 흥했을까?
예수가 성공했을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세상에서는 실패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흥하는 것이었다.


요한의 말에 정답이 있다.
요한은 신랑의 친구로 신랑의 음성을 듣는 것이
기쁨이라는...


내 기쁨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나에게만 하시는 말씀을...
내 귀, 내 마음에만 속삭여 주시는 그 사랑의 말씀을...


오늘은 달콤한 바람같은 말씀에 귀가 간지럽다.
(2020. 1. 10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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