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이 아니라 흉터였다

2019.04.14 08:57

박상형 조회 수:6

흔적이 아니라 흉터였다(갈6:11~18)

 

 

바울사도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한다.

(17)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지녔다는 예수의 흔적이란 무엇일까?

 

 

바울사도가 이 흔적이라는 말을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괴롭게 되는 일과

흔적이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바울이 괴로워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울사도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율법이 구원을 위한  조건이라는 다른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며,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다.

 

 

바울의 삶은 늘 그랬다.

예수를 위해, 예수의 복음을 위해 살다가

생긴 상처가 바로 바울이 가진 예수의 흔적이었다.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은

이렇게 많은 흔적을 가졌으니 더 이상 

그런 일들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예수로 인한 흔적들...

 

 

나에게도 이런 흔적이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흉터이다.

 

 

흔적은 예수를 자랑하다가 생긴 상처이지만

흉터는 나를 자랑하다가 생긴 상처이니까!

 

 

내가 흔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돌아다보면 

모두 흉터였다.

 

 

흉터와 흔적의 차이는 보이느냐 안보이느냐인데

내가 말했던 흔적은 너무나 잘 보였기 때문이다.

 

 

왜 난 흉터를 흔적이라고 착각하며 

이제껏 믿음생활을 해왔을까?

 

 

아마도 율법때문일 것이다.

율법에 속아서 육체의 겉 모양만을 꾸미려고 하고

십자가의 핍박은 피하고 영광만 취하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12)육체의 겉모양을 꾸미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핍박을 받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십자가에 살짝 긁힌 자국만으로 

자랑하며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세상에 대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척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것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십자가가 아닌 나를 자랑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14)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십자가로,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내가

십자가외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과연 예수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 맞을까?

 

 

쉼호흡을 한다. 숨을 고른다.

 

 

지금까지의 내 흉터들이 모두 흔적으로 바뀔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 생기는 모든 상처는 흔적이 될 수 있다.

나를 자랑하다가 생긴 흉터가 아닌

예수를 자랑하다가 얻은 예수의 흔적...

 

 

세상은 나에 대해 죽고, 나는 세상에 대해 죽은,

그런사람에게서 보여지는 그 흔적이

내게도 있어야 할테니 말이다.

 

 

아? 

언제쯤 나는 욕심에 대해 초연해 질 수 있게 될까?

(2019. 04. 1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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