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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심은 곳에는 무엇이 날까?(막4:1~20)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그러면 말씀을 심은 곳에는 무엇이 날까?

씨앗이 말씀이라니 하는 말이다.

(14)씨를 뿌리는 농부는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씨앗인 말씀은 열매와 관계가 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여도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열매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그 사람안에 어떻게 담겨져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기는 했던 길가밭은 사탄에게 빼앗겼고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던 돌짝밭도

그 들은 말씀때문에 문제가 생기자 화들짝 놀라

말씀을 뱉어 버렸고,

세상의 욕심을 가지고 말씀을 들었던 가시밭은

그것이 채워지지 않자 말씀을 버렸다.



말씀이 어떤 도구로 사용될 때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럼 말씀이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씀이 열매를 맺는 다는 말이 무엇일까?



씨앗이 열매를 맺기 위해선

씨앗이 그 나무의 전부가 될 때인 것처럼

말씀의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말씀이 그 사람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받아들인 말씀이 그 말씀을 거부할 수 있는 

내 안의  그 무엇보다 큰 상태가 되는 것이 

곧 열매이다.



직장선교를 할 거라고

일산에서 동해로 자원해서 전근한 나에게

믿음의 도구로 크게 사용될 거라는

축복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말이 열매와 관련없는 말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 대신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네가 어디 있든지 나를 신뢰할 수 있겠니?

라는 음성이었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도구로 이용되는 것 보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당신을 신뢰할 수 있는 관계였다.



잘 되어야 열매가 아니다.

숫자가 많아지고 건물이 커져야 열매가 아니다.

내 안에 말씀이 얼마나 가득차 있느냐가 열매이다.

그래야 무엇에 흔들리지 않고

그래야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을테니까!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열매이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닌

말씀일 때 그것이 열매이다.



말씀이 씨앗이니까,

말씀을 심었으니까,

말씀이 전부여야 한다.

그것이 좋은 밭이다.



말씀을 대게 많이 들었어도

말씀을 아주 기쁘게 받아들여였다해도

말씀이 전부가 되지 않으면

열매가 맺힐 수 없다.



어제 원주에서의 성경공부는 참 진지했다.

날 때부터 눈먼 장님이 치유되는 말씀,

눈을 뜨게 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들에 대해 공부했다.

진지하게 말씀을 듣는 모습들이 감동이었다.



사람은 날 때 부터 죄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여과없이 받아들일 수 없다.

말씀을 받아 들이는데 방해요소가 많다.

그것을 치워나가는 것이 믿음이다.

그것을 치워나가는 정도가 열매이다.

(12)그것은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말씀을 알아 듣는 것에서 머무는 

아이의 수준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 100%가 되는 열매의 수준을

소망해본다.

좋은 밭이 맺는 열매!

(2019.1 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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