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

2018.01.22 09:03

박상형 조회 수:66

이기주의자(고전9:19~27)


바울은 기회주의자 였다.
일관된 입장을 지니지 못하고 그때 그때의
정세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사람 말이다.
왜 그랬을까?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20)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22)


그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다.
파충류인 카멜레온이 생각난다.
환경, 빛, 온도에 따라 몸 색깔이 바뀌는...


어쨌든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라면 분명 그렇게
불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이같은 행위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였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는 없었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는 세상에서도 실 눈뜨고 보는
기회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리스도가 대체 뭐 길래?


말씀이 또 나에게 묻는다.
너에겐 그리스도가 누구니?


또 바울은 성과 지향주의자 였다.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요시 하는,
2등 했다고 기뻐하기보다는
1등을 보면서 우는 그런 사람 말이다.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24)


그의 마음에 2등은 없다. 1등밖에 없다.
아주 차갑다, 그리고 몰인정하다.


맞다. 그렇다.
남에게 이기는 일이면 그렇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이기는 일에 그렇다는 것이다.
1등하고 받으려는 그 상의 내용이 절제이다.


썩어질 면류관을 위한 운동선수도 그렇게
절제하는데
그리스도의 영원한 상인 그리스도의
사람을 얻기 위해 절제 못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했고 그 절제를 얻기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대했다는 말이다.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가 버림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27)


바울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복종시킴 없이는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버림을 받지 않도록 이라는 말은
구원을 받지 못할까봐서 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할까봐
두려워 했다는 말로 보는 것이 문맥상 타당하다.


나는 분명 이기적이다.
예수 믿고도 아직 잘 변하지 못하고 있다.
울 마나님이 폭로한다고 위협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마나님에게도 인정받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목표이다.
나를 위한 목표가 아닌 그리스도를 위한 목표...
그리스도의 사람을 얻기 위한 목표...


나는 그 목표를 위해 내 이기심을 사용한다.
하나님께 더 많은 말씀을 받아야 하고
누구보다 말씀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많이 먹어야 배부르고 배불러야 나눠 줄 수 있다.
전하고 가르쳐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성격, 인격, 여러 인간적인 면에서는
많이 아니 무지하게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서 또 많이 다음어야 하겠지만
내게 정해주신 목표만큼은 더 다듬을
필요도 없고 다시 변하지도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도 1등은 나에게 늘 어렵다.
(2018.01.2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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