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 보내

2019.04.24 09:53

박상형 조회 수:12

죽어도 못 보내(약2:1~13)

 

 

지금까지 나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를 했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그 말은 그 뜻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말의 뜻은 이웃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8)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과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말이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대조되어있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과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반대말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나를 보는 것처럼 이웃을 보고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이웃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내 눈이 나를 차별하며 보지 않을 것이고

내 마음이 나를 차별하며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을 차별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의미이다

(1)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답게 여러분은 사람의 겉모양만 보지 마십시오.

(2)교회에 금반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

(3)만일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좋은 자리에 앉히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섰든지 내 발앞에 앉으시오.' 하고 푸대접한다면

(4)사람을 차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한 셈이 되지 않습니까?

 

 

나 역시

그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그 사람의 가진 형편을 보고

그 사람의 학력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을 푸대접하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았다면

그것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겉모습이 아닌 속 모습을 보아야 한다.

다행인것은 겉 모습을 보던 내 눈과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겉 모습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안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있다.

 

 

그 사람과 말씀을 이야기 하고

말씀을 받기도 하고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말씀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과는 솔직히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가기가 힘이든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도 

페이스북에서 묵상나눔을 하다가

같은 묵상나눔을 하고 있는 목사님과 친구가 되어서 만났고, 

만나서 말씀의 이야기를 더 많이하려고 하다가 다니게 되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 교회에서

더 이상 말씀을 이야기 할 수 없다면

나는 또 다른 교회를 찾아 떠날 것이다.

 

 

겉 모양만 중시하며 보던 나를 속 모양을 보게 하신 분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이다. 

죄쪽으로 고개를 향하고,발을뻗고 있던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돌리게 만든 분도 역시 말씀이다.

 

 

난 알고있다. 나를

나에게 말씀이 없으면 분명히 세상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난 죽을따까지 말씀이다.

 

 

누구는 죽어 화장을 하면 돌이 나온다지만

내 몸에서는 말씀이 남아있기를 소망해본다.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것은 다 떠나보랠 수 있어도

말씀만은 죽어도 못 보낸다.

(2019. 4.24 수요일)


카페 정보

회원:
26
새 글:
0
등록일:
2011.05.09

로그인

오늘:
1
어제:
7
전체:
499,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