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강원도 홍천 11사단 최 모 소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사단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몇 달 전에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동안 수없는 세월 동안 종교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독교는 물론, 불교와 이슬람교 등 현존하는 종교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구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이 전장관이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최 소령은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책 한권이 그의 인생에 결정적 전기를 가져다 줬다. 신자가 된 이후에 최 소령은 사단 내 전우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싶었다. 이 전장관이라면 신자와 비신자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장병들을 예수께 인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율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한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구원의 도리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주가 떨 엄청난 사건이 아닌가.’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 란 책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결심을 하게 만든 책이다. 지구촌교회 원로 이동원 목사는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나면 ‘예수는 반드시 믿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었다.

 

지금 이 전 장관은 바로 다름 아닌 C.S 루이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회심기라고 할 수 있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와 비견될 수 있다. 78세의 노인이, 세례 받은 지 2년이 채 지난 초심자가 사람들을 예수께로 연결하는 통로로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출간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23일 현재 판매부수 30만권을 돌파했다. 이어령이 대단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창조적 사고나 문명 비평서가 아닌 종교적 회심기가 엄청나게 팔리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만난 이 전장관은 “그동안 수많은 책을 당당하게 펴냈지만 이번 책을 세상에 내민 후에는 뭔가 들킨 것 같고, 죄를 지은 사람 같은 마음이 들어서 당당하기보다는 숨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책이 나온 뒤에 수많은 단체와 교회, 대학에서 그를 초청했다. 강연회 섭외 1순위였다.

 

사람들은 이어령이 기독교와 교회도 비평해 주기를 바랬다. 여기에 그는 확실한 생각을 갖고 있다. “평생 무언가를 비판하고 살았습니다. 나의 날카로운 비평에 사람들은 환호했지요. 그러나 교회까지 와서 비판하기 싫습니다. 교회에서 세상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가능하면 자신의 강연과 저술이 현존하는 교회가 아니라 미래의 교회를 위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에게 ‘한 인간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기독교의 목적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처럼 되어라’는 미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이 땅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생명의 떡,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돌이키는 길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신자는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따라나선 자다. 신자라면 ‘이런 부름은 어떤 결단과 단절을 가져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물음을 갖고 홀로 대답을 알고 계신 분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장관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그가 세례를 받은 이후 발견한 4가지 유형의 크리스천이 있다. 먼저 발로 믿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가면 제일 눈에 많이 뜨이는 부류다. “교회에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기도나 봉사에 언제나 열심을 냅니다. 마르다와 같은 유형입니다. 이런 분들은 행위를 중시하지요.”

 

다음으로는 가슴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마리아 유형’이다.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감동하는 사람들도 교회에 많습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할렐루야’와 ‘아멘’을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머리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는 이 유형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토로했다. 발로 걸어보지도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지성의 작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머리로만 믿을 경우에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이 이 전장관이 깨달은 바다.

 

마지막으로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몸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발로만, 가슴으로만, 머리로만 믿어서는 부족하다. 모든 것이 합쳐져야 한다. 온전한 몸을 이뤄야 한다. “온 몸으로 믿는 사람이 온전한 신자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전형이시지요. 또한 이 땅의 선한 목회자와 성도님들이 몸으로 믿는 신자들일 것입니다. 여러 부정적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희망인 것은 이런 몸으로 믿는 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유형의 크리스천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입었던 지성의 무거운 갑옷을 벗고 영성의 세계로 들어왔다. 무엇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는가.

 

“굳이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말고 그냥 ‘썸씽(Something)’이라고 불러 보세요. 그런 썸씽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겁니다. 종교까지 가지 않더라도 과학자나 공부 좀 한 사람들도 이 세계에는 ‘위대한 썸씽(Great Something)’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형상화(formulate) 되는 것, 디자인 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언가 제 힘 이상의 것이 발휘되었을 때, 그것을 ‘위대한 썸씽’, 혹은 신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이 이뤄질 때에 우연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천만번 로또에 당첨됐다고 해 보세요. 그게 우연이겠습니까. 인생에는, 우주에는 한 사람이 천만번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주를 디자인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세례 받은 것, 신자가 된 것도 모두 그 위대한 썸씽의 계획 하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나에게 그 위대한 썸씽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전 장관이 ‘지성에서 영성으로’ 들어가게 될 때의 상황을 ‘플런지(Plunge·빨려들어간다)’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에게 플런지는 믿음의 단계에서 아주 중요한 용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던져지고 적셔져야 합니다. 소금에 저는 것과 같이 예수께 푹 절어져야 합니다. 겉절이는 겉만 소금이 배인 김치입니다. 속은 그대로이면서 겉만 영성에 발을 담근 겉절이와 같은 신앙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나도 대표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위대하고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를 던져야 합니다. 푹 적셔야 합니다.”

 

이 전장관은 세례 받은 이후 경험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책(지성에서 영성으로)을 낸 사람으로서 솔직히 독자들을 위해 ‘나는 정말 편안해졌습니다. 나는 이제 옛날의 내가 아닙니다’라고 수백 번 말하고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외적인 상황은 악화되어 갔습니다. 오히려 세례 받고 나서 일일이 외부에 말 못할 이야기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남들은 나보고 ‘이제 세례까지 받았으니 더 행복해 질 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하는데 나에게는 거꾸로 박해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내게 ‘이제부터 박해가 시작되리라. 더 큰 화가 닥쳐오리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례를 받은 것은 세속적 의미의 평화를 구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해체를 기대했다. “생각해보니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이 좁은 문 아닙니까? 그 분이 가신 길은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이 말하시는 행복과 성공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지 모릅니다. 요즘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실로 그 분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합니까?”

 

“이발소에서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이발사에게 몸을 맡깁니다. 이발소처럼 시퍼런 면도칼을 가지고 와도 내 맡길 수 있는 믿음의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는 하나님과의 코드가 딱 뚫려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는 교회를 ‘컴퓨터 자판’이라고 풀이한다.

 

“자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판은 내 아날로그 세계를 사이버 세계로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자판이 조금 부실하고, 잘못되었을 지라도 본질적인 기능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판이 망가진 교회를 보고 컴퓨터 자체(기독교)가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통로입니다. 현관입니다. 교회 자체가 우리가 들어가야 할 최후의 방은 아닙니다.”

 

그는 자판기 같은 종교는 이 세상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기독교에서 약속의 성취는 바로 내일 되는 것 아닙니다. 그 약속은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성취됩니다. 내일 성취되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것입니다. ‘오늘 믿으면 내일 잘 된다’는 것은 자판기지 종교가 아닙니다. 자판기 같은 종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일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습니다. 기승결(起承結)이 아닙니다. 과학은 기승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이나 문화, 종교는 기승전(起承轉)이 있어야 결(結)이 나옵니다. 반드시 그 프로세스 가운데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원인이 있고 바로 결과가 나오면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행로에는 반드시 전(轉), 즉 전환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안되지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결국 결로 갑니다. 이 믿음 갖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요.”(국민일보 미션)